메뉴판 앞에서 10분째 고민 중인 당신에게

메뉴판 앞에서 10분째 고민 중인 당신에게

"뭐 먹을래?" 이 질문이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. 점심 메뉴를 정하는 데 10분, 넷플릭스에서 볼 영화를 고르는 데 20분, 온라인 쇼핑에서 장바구니에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는 데 30분. 결국 아무것도 안 고르거나, 고르고 나서도 "저걸 할걸" 하고 후회한다.

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, 이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일상이다. 소위 "결정장애"라고 부르는 이 현상, 왜 생기는 걸까. 그리고 어떻게 하면 좀 나아질까.

결정을 못 하는 건 성격 문제가 아니다

우선 한 가지 분명히 해두자. 결정을 잘 못 하는 건 우유부단한 성격 때문이 아니다.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하루에 내리는 결정의 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.

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시작된다. 뭘 입을지, 뭘 먹을지, 어떤 길로 출근할지, 카페에서 아이스인지 핫인지, 사이즈는 뭘로 할지, 어떤 업무부터 처리할지. 대부분 사소한 결정이지만, 이것들이 쌓이면 뇌가 지친다. 이걸 "결정 피로"라고 한다.

한 연구에 따르면 사람이 하루에 내리는 결정의 수는 수만 가지에 달한다고 한다. 대부분 무의식적이지만, 의식적으로 고민하는 결정만 해도 수십에서 수백 개다. 결정 피로가 쌓이면 중요한 결정이든 사소한 결정이든 다 어려워진다. 하루 종일 크고 작은 판단을 하다 보면 저녁쯤에는 "아무거나"가 입에서 나오는 거다. 게으른 게 아니라 뇌가 지친 거다.

또 하나의 원인은 "최선의 선택"에 대한 집착이다. "이걸 골랐다가 후회하면 어떡하지?"라는 생각이 모든 선택을 무겁게 만든다. 잘못된 선택을 하면 안 된다는 압박감이 크면, 모든 선택지의 장단점을 비교하고 리뷰를 찾아보고 분석하느라 시간만 흘러간다. 완벽한 선택을 하려다 보니 아무 선택도 못 하는 아이러니다.

결정을 쉽게 만드는 실전 방법 4가지

심리학 교과서가 아니라 직접 써먹어 본 방법들이다.

1. 사소한 결정은 규칙으로 없애라

매일 반복되는 결정은 미리 정해두면 뇌가 편해진다. 예를 들어 월요일 점심은 김밥, 화요일은 국밥, 수요일은 자유 같은 식으로 요일별 기본 메뉴를 정해두는 거다. 매일 같은 걸 먹으라는 게 아니다. "기본값"을 만들어 두라는 거다. 특별히 먹고 싶은 게 있으면 기본값을 무시하면 되고, 없으면 기본값대로 가면 된다. 고민할 필요 자체가 사라진다.

스티브 잡스가 매일 같은 옷을 입은 것도 같은 원리다. 사소한 결정에 쓸 에너지를 아껴서 중요한 결정에 집중하는 거다. 나도 출근복을 5벌 세트로 정해뒀더니 아침이 15분 빨라졌다. 옷 고르느라 쓰던 시간과 에너지가 통째로 절약됐다.

2. 2분 규칙을 적용하라

메뉴를 고를 때 핸드폰 타이머를 2분 맞추고 그 안에 결정한다. 2분 안에 결정이 안 나면 첫 번째로 눈에 들어온 걸 선택한다. 넷플릭스도 마찬가지다. 2분 안에 안 골라지면 첫 번째 추천작을 그냥 본다.

이게 왜 효과가 있냐면, 사소한 결정에서 완벽한 선택이란 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. 짜장면을 먹든 짬뽕을 먹든 30분 후에 만족도 차이는 거의 없다. 오히려 그 30분의 고민 시간이 더 아깝다. 빨리 결정하고 그 선택을 즐기는 게 훨씬 현명하다.

처음에는 "이렇게 대충 정해도 되나?"라는 불안이 들 수 있다. 하지만 2주만 해보면 알게 된다. 빨리 결정해서 후회한 적보다, 오래 고민해서 더 나은 결정을 한 적이 거의 없다는 걸. 그리고 빠른 결정이 습관되면 하루 전체의 에너지가 달라진다. 사소한 곳에서 아낀 결정 에너지를 정말 중요한 일에 쓸 수 있으니까.

3. 선택지를 3개 이하로 줄여라

선택지가 많으면 결정이 어려워지는 건 당연하다. 24종류의 잼을 진열했을 때보다 6종류를 진열했을 때 구매율이 10배 높았다는 유명한 실험이 있다. 선택지가 많을수록 오히려 만족도도 떨어진다. "다른 걸 골랐으면 더 좋았을 텐데"라는 생각이 드니까.

메뉴판을 볼 때도 전체를 훑지 말고, 먹고 싶은 카테고리를 먼저 정한다. 밥, 면, 빵 중에 뭘 먹고 싶은지. 그 다음 해당 카테고리에서 3개만 후보로 올린다. 선택지가 줄어들면 결정 속도가 확 빨라진다. 쇼핑도 마찬가지다. 후보를 3개로 줄이고 그 안에서만 비교한다.

4. "돌이킬 수 있는 결정"과 "돌이킬 수 없는 결정"을 구분하라

대부분의 일상적인 결정은 돌이킬 수 있다. 옷을 잘못 샀으면 반품하면 되고, 영화가 재미없으면 끄면 되고, 메뉴가 맘에 안 들면 다음엔 다른 걸 먹으면 된다. 이런 결정에 30분씩 고민하는 건 시간 낭비다.

진짜 신중해야 하는 건 돌이킬 수 없는 결정들이다. 이직, 이사, 큰 금액의 투자 같은 것들. 이런 결정에 충분한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게 합리적이다.

이 구분을 의식적으로 하는 것만으로도 결정에 쓰는 에너지가 반으로 줄어든다. "이건 돌이킬 수 있는 결정이니까 빨리 정하자" 한 마디가 30분 고민을 2분으로 줄여준다.

참고로 "후회할까 봐" 결정을 못 하는 사람에게 한 마디.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"한 행동"보다 "하지 않은 행동"을 더 후회한다고 한다. 30분 고민하다 결국 아무것도 안 고른 것이, 빠르게 골라서 경험해본 것보다 나중에 더 아쉽게 느껴진다는 거다. 결정의 질보다 결정하지 않은 시간의 낭비가 더 큰 손해다.

오늘 딱 한 가지만

다음에 메뉴를 고를 때 타이머를 2분 맞춰보라. 2분이 지나면 눈에 보이는 첫 번째 메뉴를 시킨다. 결과가 어떻든 "빨리 결정했다"는 사실 자체에 만족해보라. 그게 연습이다.

완벽한 선택이란 건 없다. 선택한 걸 좋은 경험으로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. 짜장면을 시켰으면 짜장면을 맛있게 먹으면 된다. 짬뽕 생각은 내일 하면 된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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